
요즘 AI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걱정이 있다.
AI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글을 대신 써주고, 검색을 대신해주고, 코드를 만들어주고, 심지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까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도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런데 생각하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정말 이런 일이 AI 때문에 처음 시작된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술에게 조금씩 무언가를 맡기고 있었다.
AI보다 훨씬 전부터.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외웠다
어릴 때는 가족 전화번호 몇 개쯤은 자연스럽게 외우고 있었다. 친한 친구 집 전화번호도 기억했던 것 같다.
전화를 걸려면 번호를 알아야 했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연락처에서 이름을 검색해서 누른다. 가족 번호도, 친구 번호도, 회사 번호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당장 전화해야 한다면 몇 명의 번호를 기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딱히 불편하지 않다.
스마트폰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됐다.
길도 점점 외우지 않게 됐다
예전에는 자주 가는 곳이라면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어느 골목에서 꺾어야 하는지, 근처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 기억했다.
몇 번 다니다 보면 머릿속에 작은 지도가 생겼다.
지금은 처음 가는 곳도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지도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되고, 길을 잘못 들어도 다시 계산해준다. 막히면 다른 길도 알려준다.
엄청 편하다.
나도 지도 앱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길을 잘 아는 것과, 지도 앱이 길을 잘 아는 건 다른 이야기 아닌가?
자주 갔던 곳인데도 지도 없이 가라고 하면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길 찾는 능력을 잃었다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그 능력을 사용할 일이 줄어든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맛집도 기억보다 검색하게 됐다
어디 가서 밥을 먹을지 정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내가 가봤던 집, 누군가에게 들었던 집, 지나가다 발견했던 집이 꽤 중요했다. 자주 가는 동네에는 나만의 작은 목록 같은 것도 생겼다.
지금은 새로운 지역에 가면 먼저 검색한다.
지도 평점을 보고, 리뷰를 보고, 사진을 보고, SNS도 본다.
실패할 확률은 줄었다. 여행할 때는 특히 좋다. 나도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게 쌓이다 보니 조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어딘가를 직접 발견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 곳을 잘 찾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가 단골이 되는 경험보다, 이미 검증된 곳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것도 나쁜 건 아니다.
그냥 우리가 편리함과 함께 조금씩 바꿔온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이제 AI가 왔다
전화번호는 연락처가 기억해준다.
길은 지도가 알려준다.
정보는 검색엔진이 찾아준다.
볼 영상과 살 물건은 추천 알고리즘이 골라준다.
그리고 이제 AI는 한 단계 더 들어왔다.
생각하는 과정 자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을 어떻게 시작할지, 코드를 어떻게 짤지,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내 생각에 빠진 부분은 없는지까지 묻기 시작했다.
예전 기술들이 주로 기억하거나 찾아주는 역할을 했다면, AI는 같이 생각하는 영역에 가까워졌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AI를 보면서 이전보다 더 큰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AI를 안 쓰자는 생각은 없다
오히려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개발하면서 막힌 부분을 확인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선택지를 찾고, 글을 정리할 때도 도움을 받는다.
지도 앱이 있는데 굳이 종이 지도를 들고 다닐 생각이 없는 것처럼, AI가 있는데 일부러 모든 일을 어렵게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기술을 쓰느냐가 아니라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 내가 가지고 있고, 어디부터 기술에게 맡길 것인가.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길을 조금 덜 외워도 괜찮고, 검색해서 맛집을 찾아도 괜찮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왜 어떤 결정을 했는지, 내 생각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까지 모르게 된다면 조금 다른 문제다.
편리함이 생길 때마다 작은 무언가를 넘겨왔다
스마트폰은 정말 많은 것을 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AI도 아마 비슷할 것 같다.
몇 년 뒤에는 지금 우리가 AI에게 맡기는 많은 일들이 너무 당연해져서, 굳이 ‘AI를 사용한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가끔은 확인하고 싶다.
이 편리함을 얻으면서 나는 무엇을 덜 하게 됐을까.
전화번호를 덜 외우게 됐고, 길을 덜 기억하게 됐고, 직접 찾아 헤매는 일도 줄었다.
그리고 이제는 생각의 일부도 맡기기 시작했다.
기술이 무서운 건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무언가를 빼앗아가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편해서,
우리가 스스로 조금씩 넘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AI가 무섭냐고 물으면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AI가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기술과 그런 거래를 하고 있었다.
'기술이 조금 무섭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진 위치정보(EXIF·GPS) 확인·삭제 방법 — 내가 찍은 사진엔 어디까지 남을까? (1) | 2026.09.27 |
|---|---|
| 웹사이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0) | 2026.09.22 |
| AI가 코드를 대신 써줄수록, 나는 더 알아야 했다 (0) | 2026.09.20 |
| 우리는 앱을 설치할 때, 우리를 조금씩 넘겨준다. (1) | 2026.09.19 |
| 사진 한 장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0) | 2026.09.17 |